[人터뷰 : 松本ひとみ] ‘한일 교류 클럽 どんあり(동아리)’ 20년, 마츠모토 히토미 사장을 만나다.

  • 강혁 기자
  • 발행 2021-09-17 09:16


▲ 서울 중구 정동에 위치한 동아리 본점 외관. 1층부터 3층까지 이자카야로 개성 있게 활용하고 있다. 


  가을 바람이 선선해진 9월,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에 위치한 동아리 본점에서 마츠모토(松本ひとみ) 사장을 만났다. 마츠모토 사장은 한국에서 20년째 일본 가정식 요리 이자카야를 운영하면서 최근 서울 중구 정동에 '동아리 본점' 5층 건물을 세울 만큼 성공한 상징적 인물이다. 인터뷰는 그녀의 유창한 한국어로 진행됐다.


- 한국에 처음 오게 된 건 언제인가요 -

  88올림픽 그 전이니까 87년 정도, 처음엔 어릴 때 친구랑 같이 그냥 뭐 여행으로 아시아 나라 어딘가 가자 해서 한국에 왔어요. 제가 오사카 출신이라 한국이라 하면 오사카에 있는 한국 교포분들의 조금 조용한 모습만 상상하고 왔는데 막상 와보니까 이건 뭐 ‘아줌마’들이 너무 힘이 넘치는 거에요. 남대문 시장에 갔을 때, 아 이게 진짜 한국인이구나 느꼈어요.

  거기서 아줌마들이 제가 한국말을 못 하는데도 계속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 “맛있게 먹어라” “많이 많이 먹어라” 하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도 아 이분들은 나한테 뭔가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말 걸어 주신다고 느꼈어요.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듣는데도 말하시는 거 보고 너무 재미있다, 오사카사람은 좀 시끄럽기도 하고 그런데, 한국에 와보니까 오사카사람이랑 비슷한 모습 보고 ‘아 너무 너무 좋다’ 생각했죠. 그래서 말을 한 마디도 못하는 게 더 아쉬워서 한국말을 배워야겠다 생각하게 됐어요. 다음에 올 때는 그 아줌마들이랑 한 마디라도 한국말로 이야기하고 싶어지더라구요.

  일본 돌아가 한국말로 공부할 수 있는 곳을 찾았어요. 그런데 학원 같은 곳도 하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민단(民團)에 갔어요. 민단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랑 같이 공부했는데 한국에서 파견된 선생님이 “당신은 여기서 공부하면 안 된다” 하시는 거에요. 한국말하고 일본말을 섞어 이야기하는 데다 제주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사투리와 일본말이 짬뽕이 된다는 거에요. 그래서 선생님이 오사카 제일대학에서 공부한 한국 여학생을 소개시켜주셨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어를 배우게 되었어요. 그게 큰 도움이 됐죠.


▲ 인터뷰를 시작하며 가게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마츠모토 사장



- 그렇게 한국어를 배우다가 완전히 한국에 오시게 된 계기가 -

  26년간 근무했었던 회사가 다른 회사랑 합병이 돼서 희망 퇴직 신청을 받고 있었어요. 나이도 마흔 다섯이었기 때문에 합병하는 회사에 가는 것 보단 거기서 돈을 받아서 무슨 일이든 시작하기 전에 한국에 유학 가서 한국말을 완벽하게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실업보험 1년 활용해서 한국에 와 연세대학교 어학당에 입학했어요.
 

  그때는 일단 26년간 쉬는 것도 없이 그냥 일만 했기 때문에 학교에서 1년 정도 한국말로 공부하고 그 다음에 한국하고 일본에 관련있는 일을 하고싶다는 생각했어요. 그 일은 물론 뭐든 한국이 아니라 일본에서 하고 싶다 생각했는데 졸업까지 하고 보니까 한국을 떠나기가 너무 아쉬워지더라구요.



- 어학당은 몇 년 동안 다니셨어요 -

  좀 자랑해도 되나요?(웃음) 일본어는 1급이 제일 높은데 한국어는 6급이 제일 높아요. 처음 시험을 봤을 때 5급이었어요. 그런데 5급으로 시작하면 5급 6급 6개월밖에 있을 수가 없어요 비자 때문에. 그래서 4급부터 시작했어요. 제가 1년 계획으로 왔기 때문에 4급 5급 6급까지 하는 게 좋겠다 생각했죠. 급수가 높아지면서 점점 한국을 떠나기 싫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쉽다. 좀 더 있고 싶은데 있을 수 없을까’ 했지만 비자 때문에 꼭 일본으로 돌아가야 했었어요.
 

  비자 받으려면은 7급인 전문반을 한번 더 해야했는데 전문반은 더 이상 갈 수 없어서 출입관리소에 갔어요. 가서 아저씨한테. 나는 마흔 다섯 살로 나이도 많은데, 한국에 와서 공부 많이 했고 이제야 한국에 조금 재미를 느끼고 있다. 여기저기 여행도 가고 싶은데 좀 한 번만 비자 주시면 안 될까요? 라고 말했더니 여지껏 그런 사람이 없었데요. 성적서도 가져갔는데 90점이하가 없었어요. 그래서 아저씨가 ‘너무 잘한다’ 면서 일본 아줌마가 이렇게 열심히 공부했으니 비자를 3개월 연장해주겠다며 진짜로 연장해주더라구요.

  
  그 이야길 학교 선생님한테 말했더니 ‘거짓말 하지말아라’ 했죠. 그래서 진짜다 명함 보여주며 이 사람한테 전화해보라고 확인시켜줬었어요. 그런 패기만으로 비자 연장을 해준 건 제가 처음이라고 하더라구요.(웃음) 근데 제가 그렇게 되니까 다른 학생들도 몇 명 연장이 됐어요. 대부분 다 여자친구나 남자친구가 있어서 더 있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들도 나 덕분에 연장 된거죠.(웃음) 3개월 비자가 연장 되었으니까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여행이라도 가야 하는데 나는 그게아니라 식당이 하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부동산에 가서 가게 자리를 알아봤습니다.

  처음엔 사기도 당하고 고생도 많이 했죠. 첫 가게는 신촌로타리에서 서강대 가는 쪽 골목에서 시작했는데 처음엔 부동산에서 보증금 2천만이라 해 생각보다 싸다 생각하고 다음날 계약하러 갔더니 갑자기 3천만이라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아니 한국말로 3천이랑 4천은 헷갈릴 수 있지만, 2천하고 3천은 헷갈리지 않는다. 분명히 2천만원이라 하지 않았냐” 되물었더니 “당신이 일본인이어서 잘못 알아 들은거다. 난 그렇게 말한 적 없다” 라고 잡아 떼시더라구요.


  그렇게 가격 실랑이를 한창 하다가 결국 제가 그 가게 화장실이 너무 맘에 들어 계약을 했어요. 그때 당시만해도 화장실이 굉장히 더러운 가게가 많았기 때문에 저는 손님들이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깨끗한 화장실을 갖춘 가게를 열고 싶었거던요. 그런데 입주하고 보니깐 2층이 레즈비언바였고, 계속 가게 안팎에서 담배를 피우는 바람에 손님들이 제 가게에 올라오기도 힘들 정도였어요.


▲ 정동 동아리 본점 2층, '뎃판야키'용 철판 앞에 앉아 일본 요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마츠모토 사장.  



- 요리를 잘할 수 있었던 배경 같은 게 있을까요 -

  요리를 잘할 수 있는 배경은 우선 먹는 거 좋아하고, 어머니가 오코노미야키 집을 했었어요. 부끄럽지만 제가 젊을 때부터 ‘절대미각’ 같이 한번 먹은 음식은 비슷하게 만들 수 있었어요. 그래서밖에서 사먹은 음식도 집에서 그 음식을 생각하며 만들어보면 실제로 똑 같은 맛이 나서 주로 친구들을 초대해서 음식을 해먹었습니다. 지금도 식자재 야채나 고기 같은 거는 전부 다 한국에서 사지만 일본 간장 하나 있으면 돈부리소스나 모든 음식 소스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간장만큼은 일본에서 수입해옵니다. 한국 간장으로는 그 맛을 낼 수 없기 때문이고 된장도 그래서 일본 것만 씁니다.

  이자카야를 한 이유는 제가 한국생활을 할 때 일본음식이 먹고싶어서 간 일식집이 전부 본토의 맛이 아닌, 한국식 일본음식이라고 생각되어서에요 우동국물을 먹더라도 ‘아 이건 일본의 맛이 아닌데…’라는 생각에 내가 직접 만들어보자! 라는 생각까지 이어지게 되었고 그래서 결국 가게를 차리게 된거죠. 처음에는 장소도 외지고 해서 손님들 없다가 조금씩 입소문에 손님들이 늘기 시작했고, 3년 째 됐을 때 아르바이트하던 사람이 자기가 그 가게를 운영하고 싶다 해서 넘겨주고 저는 더 좋은 위치로 갈 수 있게 됐죠.


- 이름은 처음부터 '동아리' 였나요 -

  네 처음부터 동아리였어요. 원래는 제 이름 마츠모토나 오사카같은 일본식당다운 이름을 지으라고 많은사람들이 추천해줬지만 저는 동아리가 가장 매력적이였습니다.

  
  대학가에서 가게를 냈기 때문에 ‘동아리’들을 많이 봐서 그럴 수도 있지만 한국사람과 일본사람들이 우리 가게에서 모여 하나의 ‘동아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게이름을 ‘동아리’라고 지었습니다. ‘동아리’라고 이름지었을 때 호프집 같은 느낌이라고 주변의 만류도 많이 있었습니다.

  
  가게에 오시는 고객들마다 가게이름의 뜻을 많이 물어봅니다. 한국분들은 일본어로 쓰여있으니까 ‘동아리가 무슨 뜻이에요?’ 라고 물으면 ‘한국의 동아리를 생각하면 된다’ ‘한국이 너무 좋아서 한국사람들과 같이 먹고 마시고 대화하며 때로는 싸우지만 그래도 그것이 동아리다’ 라고 대답합니다. 일본분들한테도 똑같이 설명하면서 비록 내가 여기서 식당이라는 형태로 운영하지만 한국분들과 일본분들이 서로모여 교류하고 그것이 한일관계에도 도움이 되면 좋지않을까 라는 생각에 ‘한일 교류 클럽 동아리’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한일 교류 클럽’은 한글로, 동아리(どんあり)는 히라가나로 썼습니다. 그렇게 올해 20년차가 됐네요. 지금도 손님들이 동아리가 뭐냐 하면 그렇게 계속 말해요. 진짜 그런 마음으로 하는 거라서. 처음에는 촌스럽다는 둥, 왜 한국 동아리냐는 둥 말을 많이 들었는데 이제는 뭐.(웃음)


▲ 마츠모토 사장은 항상 손님들에게 먼저 다가가 인사하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눈다. 그녀의 오사카 사투리는 마치 일본에 와있는 듯한 향수를 불러낸다. 



- 그렇게 한국에서 가게를 하고 많은 한국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

  한국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말 못하면 병 걸린다‘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일본 사람은 말을 좀 돌리면서 이야기하고는 하는데, 저는 오사카 사람이라 그런지 한국사람 성격에 가까운 사람 같아요. 할말은 해야 하는.(웃음)


  시장에서 아줌마들이랑 많이 싸웠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신촌에 있는 한 마트에 오징어를 사러 갔을때에요. 오징어를 사려고 들었더니 오징어에 구멍이 나 있어서 오징어를 바꿔달라고 했는데 아주머니가 ‘다 그런거니까 그냥 사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그 자리에서 ‘싫다 바꿔달라’고 했더니, 그럴거면 저기 있는 현대백화점에 가서 사세요. 라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그렇게 말하시면 안된다’고 아주머니랑 싸웠어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아주머니랑 한국말로 싸우는 것도 재밌었어요.(웃음) 일본에서는 손님한테 그런 말을 안 하기 때문에 손님도 ‘싸우기 싫다’ 라기 보다는 안 싸우게 되는 것인데 한국에서는 내가 느끼는 것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싸우는 것도 재밌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그 이튿날에 마트에 다시 갔을 때 일본에서 사온 카스테라를 ‘오징어 언니’한테 가져 갔어요. 그러고 나니 그때부턴 예쁜 오징어를 골라서 주시더라구요. 저는 그런 부분에서 되게 ‘인간답다’라고 많이 느꼈습니다.

▲ 정동 동아리 본점 1층에는 가든 형태 공간에 숯을 피워 둘러 앉을 수 있는 특별석도 마련되어 있다. 인기석인 만큼 이날도 이미 예약이 되어 있었다. 


- 뭔가 일본식 ‘타테마에’가 없는 한국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의 인간미가 느껴져서 좋았다는 말씀이신거죠 -

  네 할 말은 하면서 싸웠어요. 싸우면서 하나가 되는 거죠.(웃음) 그것이 동아리라 생각해요. 우리 가게에서 그렇게 가끔 싸워도 되니까 본심을 서로가 이야기해줬으면 좋겠어요. 한국 사람 중에 일본 사람은 ‘역사 이야기는 안 배웠다. 학교에서 공부 안 했다. 우리는 모르겠다.’ 그렇게 피하는 게 싫다는 분들도 있더라구요. 어떤 때는 우리도 이런 사정이 있어서 한국에 대해서 그렇게 했었다. ‘당신들도 이런 거 아니었을까’ ‘서로가 이해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그렇게 싸우고 싶다 그런 거예요.

  
  이제 가게가 크다 보니까 정치적인 이야기는 가급적 안 하려고 하는데 처음에 학생 기분이었을 때는 많이 싸웠어요. 근데 그거는 일본 입장을 미화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그것을 지어내서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라 진짜 몰랐었던 부분들이 있는거죠. 그러면 어떻게 다른 게 있는지 말을 해라. 나도 그러면 내가 알고 있는 일본을 설명할께. 서로가 그렇게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게 사실 제가 독특한 일본사람이라서라기 보다, 그냥 한국어 공부하면서 한국어로 싸우는게 재밌었기 때문인지도 몰라요.(웃음)


- 그런 에피소드도 겪고 하시면서 한국 사람에 대한 이해도 더 많아지셨고, 그러면서 점점 장사도 잘 되고 가게도 늘려가신 거네요 -

  네, 두 번째 가게는 SJC(Seoul Japan Club)가 있는 영풍문고 빌딩 옆에서 했어요. 히타치 손님이 1년정도 비어있는 자리가 있는데 오면 장사가 너무 잘될 것 같다고 해서 사주까지 보고 가게를 계약하게 됐어요. 신촌에서 했었을 땐 너무 힘들고 빨리 나가고 싶었는데 그곳으로 가게를 옮기자 마자 정말 장사가 잘되더라구요. 그 당시 영풍빌딩에 일본기업이 14개 있었는데 그쪽에 입소문이 나면서 장사가 잘 되었죠.

 
  그때는 스미토모상사나 미쓰비시은행 등도 있어서 5시만 되면 가게에 자리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매번 예약전화를 받으면 ‘죄송합니다 자리가 없어요’라고 말하는 게 일이였습니다. 자리가 없으니까 손님이 더 오고 싶어했던 것도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거기에서 6년동안 장사했습니다. 그렇게 가게를 세 개까지 운영하게 됐죠.

▲ 정동 동아리 본점 3층에는 일반 식당에선 잘 볼 수 없는 조주기가 있다. 아직 사용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 한국 고구마로 일본식 '이모 쇼츄(芋焼酎)' 를 만들고 싶다는 마츠모토 사장. 한일 소주 연구회 활동도 하고 있어 언젠가 회원들과 함께 이곳에서 소주를 만들면서 연구하고 싶다고.  


- 그렇게 한국에서 수많은 한국 사람들을 겪으면서 ‘진짜 이거는 한국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이랑 다르다’라고 느꼈던 적 있었을까요 -

  가게에서 손님을 맞으면 일본 사람하고 한국 사람 차이는 가게에서 손님이 나갈 때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웬만하면 현관까지 나가서 ‘감사했습니다’ 라고 인사를 합니다. 그러면 일본 사람들은 ‘어~ 오이시캇타요(맛있었어요)~’ 하면서 얼굴은 잘 안 보고 그냥 가시는 분이 많은데, 한국 사람은 제가 ‘감사했습니다’ 라고 하면 그 손님도 나한테 ‘감사했습니다’ 라고 해주시는 거에요. 손님이 오히려 더 정중히 인사해주셔서 제가 미안한 경우도 있어요.


  그거는 왜 그럴까 생각해 봤을 때 다른 가게에서는 그렇게 현관까지 잘 배웅인사를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란 생각도 들더라구요. 그래서 사장인 제가 현관까지 배웅 나가는 것을 특별하게 생각하시는 거 같아요. 주인이 직접 운영하는 식당은 조금 다르죠. 그래서 전 늘 ‘주인은 가게를 비우면 안된다’ 라고 생각하고 있고, 지금 이 가게로 옮기고 1,2층으로 나뉘어지게 되면서 손님이 나갈 때 사장인 저를 부르지 않으면 직원들을 혼낸 적도 있어요. 손님들이 서운해할 수 있기 때문이죠.


▲ 동아리 인기 도시락 메뉴인  '함박 도시락'. 마츠모토 사장은 도시락 반찬까지 모두 직접 만든다고 한다. 동아리 도시락은 '배달의 민족' 앱을 통해서도 주문 가능하다.


- 이곳 정동으로 오시고 나서 점심 장사를 시작하셨고, 이제 코로나로 도시락도 하시게 되셨다고요. 반응은 어떤가요 -

  도시락은 지난 8월 16일부터 시작했어요. 인근에 한 회사 얘기를 하면, 처음 주문이 4개였다가, 그 뒤에 8개가 되고 27개가 되더니 오늘 52개 주문하셨어요. 비결은 인스턴트 돈가스 같은 거 사용하지 않고 반찬도 제가 다 만들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그날 그날의 재료를 손질하고 반찬을 새로 만들어서 반찬의 색까지 고려해서 도시락을 만듭니다.

  
  아직은 잘된다고 말하기는 그렇지만 리뷰를 보면 대부분 일본 음식 중 가장 맛있다. 일본에서 먹은 것 보다 맛있다고 칭찬해주셔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한국 도시락보다는 일본의 벤또와 가깝다고 생각해요. 반찬의 방향부터 모양까지 전부 일렬로 맞춰서 고객에게 제공합니다. 제 눈앞에서 먹는 것이 아니라 얼굴도 모르는 손님이 제 음식을 먹는 것이기 때문에 신경을 더 많이 써서 만듭니다. 드시면서 누가 만들었을까? 라고 궁금해하시는 것 만으로도 저에게는 굉장한 기쁨입니다.


  도시락 장사는 사실 아직 잘 안 돼요. 하지만 안 되는 거도 좋다고 보는 것이, 직원들은 ‘사장님 하루에 5개 6개 정도면 아무 의미가 없는 거 아닐까요’라고 불평합니다만 저는 그것이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20개 30개씩 주문을 받으면 매출적인 부분에서는 당연히 좋겠지만 숙련되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실수가 발생하게 되고 실수를 경험한 손님은 다시는 저희 도시락을 찾지 않으시겠죠 그렇기 때문에 주문이 적게 들어와도 저는 숙련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도시락 장사하기 굉장히 싫었습니다. 주변분들이 ‘왜 동아리가 도시락 장사를 시작했어?’ 라는 말을 듣고 자존심이 굉장히 많이 상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상황에 매출이 감소해 어려워졌으니 직원들의 월급을 주기위해서라도 자존심은 접어두고 도시락장사를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 이날 점심 52개 단체 도시락 주문이 들어온 걸 기념해 찍은 사진.



- 여기 저녁 메뉴 중에 한국 사람이 제일 많이 찾는 인기 있는 메뉴가 뭐예요 -

  인기 있는 거는 토리노카라아게(닭튀김)나 오코노미야키. 제가 뭐 40년 이상 만들어 온 음식이라서. 오코노미야키는 대를 이은 오사카 전통입니다. 다른 데에서 드시면 우리 맛은 아마 안 날 겁니다.(웃음)
다른 이자카야에서 잘 먹을 수 없는 일본 가정식 메뉴 중에서는 가지 된장 볶음이 가장 인기 있습니다. 한국분들은 먹고 ‘죽여주네!’라고 표현해주세요. 남자손님도 여자손님도 진짜 맛있다고 해주십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어쩌면 한국사람들도 일본 가정식 요리를 좋아하시는 거 아닐까 생각해요.

▲ 동아리의 인기 메뉴 중 하나, 토리노 카라아게 (닭튀김)

▲ 대를 이어 젊을 때부터 40년 이상 만들어왔다는 오사카식 오코노미야키. 마츠모토 사장은 다른 곳에선 이 맛을 낼 수 없을 거라 자신한다. 

▲ 한국 손님들이 '죽여주네~' 라고 감탄한다는 가지 된장 볶음. 동아리에서는 일반 이자카야에서 볼 수 없는 일본 가정식 메뉴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 한국에서 생활하시면서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으세요 -

  본래 계획은 여기 건물 4층에 집이 있는데 거기에 스튜디오 같이 해서 한국분들 상대로 일본 가정식 요리교실을 열고 싶었어요. 건물을 지을 때부터 그런 생각으로 지었는데 코로나가 심해져서 못하고 있어 아쉬워요


  또, 아직 기업 비밀이긴 한데, 코로나시대에 맞춰서 밀키트를 만드는 것도 생각 중입니다. 예를 들어 스키야키라면, 제가 고기, 채소, 다시, 국물, 소스까지 다 준비해서 집에서는 간단하게 데우기만 하면 되는 그런 밀키트 말이죠. 한국 가정에서도 손쉽게 일본 가정식을 즐기게 하고싶어요


- 마지막으로 한일 관계가 좀 좋아지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그냥 일반인들도 할 수 있는 일. 어떤 거를 노력하면 한일 관계가 좋아질 거다 그런 생각이 있으신가요 -

  제 생각에 제가 일본 사람으로서 일본의 좋은 부분이나 일본이 제일 잘하는 부분을 상대방한테 어필을 하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일본에도 이런 좋은 부분이 있구나, 일본사람들도 친절하구나 이런 장점들을 어필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똑같이 한국도 장점들을 더 강조해서 서로 어필한다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일본사람은 보통 도와달라고 하면 대답으로만 알겠다 말하고 실질적인 도움은 잘 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만, 힘들 때 도시락을 주문해준 한국분들처럼 한국분들은 실제로 도와달라고 요청하면 힘 닿는 선에서 도와주시는 것 같아 그 점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래서 일본분들한테는 도움을 잘 요청하지않지만 한국분들한테는 오히려 조금 더 도와달라는 말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서로가 한일 관계의 나쁜 부분만 보지 말고 좋은 부분을 더 많이 보면 좀 더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조금씩 싸우더라도(웃음) 그런 이야기들을 마음껏 있는 그대로 나눌 수 있는 그런 동아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 인터뷰를 마치며 앞으로의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한 그녀의 바람을 밝은 미소로 전하고 있는 마츠모토 사장. 


* 주소 : 서울 중구 정동길 12-6 이자카야 동아리 정동본점

* 도시락 주문 및 예약 : 02-773-1103



 (취재 기자 : 강혁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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