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한일 법조의 비교 2. ‘형사사법 환경’

  • 강혁 기자
  • 발행 2022-01-06 15:44

한국과 일본의 법조를 이야기함에 있어 서로의 다른 점을 쉽게 알 수 있는 지점은 형사사법 환경과 관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한국과 일본의 범죄에 대한 인식 및 사회적 분위기 등에 대한 차이점을 잘 들여다 볼 수 있는 포인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일본의 범죄에 대한 인식 및 사회 분위기 등에 관해 몇 가지 살펴보자.

일본에서 강도, 살인 등 강력범죄가 일어나면, 신문, 방송 등 언론 미디어는 그야말로 모두가 탐정이 된다. 피의자의 얼굴, 가족 내력, 주변 인물, 교우관계, 출신학교, 직장 등을 모두 조사하여 까발리는 것은 물론, 심지어는 피의자의 부모에게까지 카메라를 들이댄다. 피의자에게 있어 사생활이란 없고 이미 범죄가 기정사실이 되어 버린다. 언론에선 나름대로 사건을 분석하고, 시뮬레이션 등을 활용하여 사건의 동기 및 실체적 진실을 찾으려 한다. 그리고 사회적인 관심을 끄는 범죄 사건의 공판이 시작되면 재판을 참관하려는 사람들이 전날 밤부터 줄을 서서 기다린다(물론 모든 사건이 그런 것은 아니다). 긴 기다림 후 번호표를 받아 든 사람들의 밝은(?) 얼굴도 볼 수 있다. 살인 사건의 경우, 피살자 가족은 영정 사진을 들고 법정 맨 앞줄에 자리를 잡는다. 물론 영정 사진을 들고 법정에 들어가는 모습 또한 방영이 되고, 공판이 끝나면 기자들은 피해자 가족에게 마이크를 들이민다. 피살자 가족은 판에 박은 듯 이러한 불행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피고인을 극형인 사형에 처해 달라고 읍소하고, 이러한 인터뷰 장면은 전국에 방송된다. 만약 무기징역형이라도 선고되면, 다시 사형을 선고하여 달라고 눈물로 기자회견을 연다. 그리고 이러한 법정 방청을 취미로 하는 소위 덕후(*오타쿠)들이 있고, 이들은 모임을 만들어 서로 정보를 공유한다고 한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공정한 판결이 이루어질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일본은 구속수사가 원칙인 것처럼 보인다(물론 일본의 형사소송법도 ‘임의수사의 원칙’, 즉 ‘구속과 같은 강제수사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원칙’을 두고 있기는 하다). 즉, 수사기관은 아주 경미한 죄(형량이 경미한 벌금, 과료, 구류에 해당하는 죄)가 아닌 경우는 대부분 체포장을 신청하고 법원은 이를 발부하는데, 일단 체포된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가 이루어지는 비율은 93%에 달한다. 그리고 일본의 법원은 수사기관의 영장신청에 거의 99% 이상 체포장 내지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것이 현실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구속영장 영장기각률(2019년 기준 약 30%)과 비교하면 너무도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일본은 일단 기소되고 나면 사실상 구속기간의 제한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즉, 일본형사소송법 상, 기소 후 구속기간은 원칙적으로 2개월이지만, 계속하여 구속할 필요성이 있는 경우는 1개월씩 갱신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같이 구속 후 6개월 이내에 1심 판결을 하여야 하고, 1심 판결 후 4개월 이내 2심 판결, 2심 판결 후 최장 6개월 이내 대법원 판결이 나와야 한다는 등의 제한이 없기에, 기소 후에는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피고인을 사실상 무제한으로 구속하여 둘 수 있다. 기억에도 새로운 1995년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사건으로 그 해 구속된 오움 진리교의 교주 및 교단 간부 등 13명의 재판이 확정된 것은 2011년 12월이었다. 무려 16년 걸려 재판이 확정되었고, 그 동안 계속 구금된 상태였다. 물론 위 사건은 그렇다 하더라도 혹시 무고한 사람이 이렇게 장기간 구금되어 있다가 나중에 누명을 벗어 무죄로 판명된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일본에도 나중에 무죄가 확정되면, 구속기간 동안을 금전으로 보상하여 주는 제도는 있다. 그러나 실컷 인신이 구속되어 있다가 이를 금전으로 보상 받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아니라는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리고 더 이상한 것은, 이에 대하여 일본 변호사들과 의견을 나누어 보았을 때 그들은 별로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고, 이에 대하여 법률 개정의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 듯하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형사사법 절차와 관련하여 중요 법률 개정은 거의 없었다.

이러한 일본의 형사사법 환경은 일본으로부터 근대 형사법을 계수한 한국의 현실과는 너무도 큰 괴리를 느끼게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은 형사피의자, 피고인에 대한 인권보호의 개념이 없는가? 무죄추정의 원칙이란 민주주의의 대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것인가? 의문이 든다.

다음으로, 일본에서의 범죄자 인권 보호에 대한 인식은 어떠한가에 대하여 살펴보자.

아시는 바와 같이 일본은 ‘와(和)’를 중요시 하는 나라이다. 섬나라 일본의 지정학적 환경 및 역사적 경험에서 형성된 ‘와(和)’라는 개념은 일본인이 가장 중시하는 개념 중 하나이다. 그런데, 일본에서 범죄자란 이 중요한 ‘와(和)’를 깨뜨린 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원래는 무라하치부(村八分, 마을의 법도를 어긴 사람과 그 가족을 마을 사람들이 의논해서 집단으로 따돌리는 등의 제재행위)의 대상으로 보았던 자들을 의미하였다. 이런 연유로 이들에게는 일반인들이 누리는 것 보다 조금은 인권 침해를 당하여도 된다는 인식이 생긴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인식이 있기에 일본은 범죄자들의 인권보호보다는 피해자의 인권보호가 더 중요한 나라가 된 것 아닌가 한다(물론 최근 한국에서도 피해자의 보호 문제가 사회문제화 되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범죄자에 대한 인식은 형사피의자의 태도에서도 나타난다. 즉, 일본 형사사건의 90%이상이 자신의 범죄를 자백한다. 즉, 범죄를 저지른 자들도 일단 검거되면 90% 이상이 자신의 범죄를 시인하고 용서를 빈다. 범죄를 시인하지 않는 부인율이 87%를 넘는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이는 일본에서의 범죄란 ‘와(和)’를 깨뜨린 것으로 검거되면 빨리 시인하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일본인들의 인식이 크게 작용한 것 아닌가 한다.

이에 비해서 한국은 군사독재의 시기 등을 거치면서 형사피의자∙피고인의 인권이 강조되는 형사절차 관련법의 개정이 많이 이루어졌고, 이로 인하여 형사피의자∙피고인의 인권보호 측면에 있어서는 일본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개선이 있어 왔다. 즉, 암울했던 독재시절 많은 인권 침해 사건들이 있었고 이로 인하여 피해를 당해왔던 많은 우리 국민들은 선진의 형사소송 제도 및 원칙들을 도입하는데 힘을 모았고, 이제는 세계 어디 내어 놓아도 뒤떨어지지 않는 피의자∙피고인의 인권 보호 측면이 강화된 형사법 체계 및 형사사법 환경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최근에는 일본도 자신들이 형사사법 절차에 있어 선진 외국과 비교할 때 뒤떨어진 것을 알고서, 수사과정의 비디오 촬영 등 형사사법제도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일본보다 앞서가는 한국의 여러 법률 제도를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물론 실제로 일본 형사법 제도가 바뀌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리라).

일본으로부터 근대법 체계를 계수한 우리나라가 이제는 일본이 배우고 싶어 하는 형사사법제도를 가지게 된 것이다. 군사정권 등 힘든 시절을 잘 견디며, 인권 보호를 위하여 여러 차례의 법개정을 하여 온 우리 국민들의 노력 덕분일 것이다. 물론 우리 형사법 체계가 아직 보완하여야 할 부분이 많은 것은 알고 있으나. 한국변호사로서 긍지를 느끼는 대목이기도 하다.


<필자> 박인동 변호사
- 現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 주일 한국기업연합회 법률고문
- (재)한일산업·기술산업협력재단 감사
- 前 일본 동경변호사회 회원 (2007-2014)
- 일본변호사연합회 국제교류위원회 간사 (2008-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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