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한일간 법률 제정과 개정의 차이


필자가 처음 일본에 체재한 것은 2000년 3월부터 1년간으로, 와세다대학 법학연구과(우리의 법학과 대학원) 객원연구원으로 있었던 시기였다. 당시 한국은 1997년 말의 IMF 외환위기 사태를 겪고, IMF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 요구를 수용하여 상법 회사편(이하, 편의상 ‘회사법’이라 함)을 대폭 개정하는 작업을 마친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즉, 우리나라 회사법에 소규모합병제도, 감사위원회 제도 등 미국식 법제들을 과감히 도입하며 기업구조조정의 지원 및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에 초점이 맞추어진 법개정이 이루어지게 된 때였다.

그 당시 일본 회사법(일본은 상법과 분리되어 있음) 학계에서는 이러한 한국의 회사법 개정 동향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한국의 유명한 회사법 교수를 초빙하여 강연을 듣거나 자기들끼리의 연구회(勉強会)에서도 한국 회사법을 테마로 서로 발표하고 토론하며 공부를 했다. 한국 출신의 법률가인 필자에게도 많은 질문을 했다. 그 질문들의 기저에는 ‘한국의 법률개정 속도가 빠른데에 대한 놀라움’이 깔려 있는 것 같았다. 예컨대, 자신들은 20년 이상이나 ‘감사위원회 도입’ 여부를 토의하고 검토하여 왔음에도 그때까지 도입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한국은 어떻게 그렇게 빨리 도입할 수 있는지 라는 의구심(졸속 입법 아닌가?)을 품고 있는 듯도 했다. 물론 한국의 경우 IMF사태를 겪은 비상 시기이므로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은 하면서도 법률 개정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는 것인가에 대하여 선뜻 납득은 못하는 것 같았다.

이러한 일본 법학자들의 태도를 바라보며, 한국과 일본의 법률 제정 및 개정의 차이점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이에 이번 글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법률 제정과 개정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한 나라의 법률 제정 및 개정 권한은 입법기관인 국회가 가지고 있다. 이는 3권분립 원칙을 가진 문명국가라면 대동소이할 것이다. 그리고 통상 법률(안)이 만들어지는 곳은 행정부와 국회의원이다. 행정부에서 만든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정부입법(일본에선 ‘내각입법’이라 한다)’이 되고,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률안이 국회에서 결의되면 ‘의원입법’이라 한다. 일반적으로 대통령제인 국가에서는 ‘정부입법’이 많고 의원내각제 국가에서는 ‘의원입법’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 대통령제 국가는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가 정부정책을 강력하게 집행하기 위하여 많은 정부입법을 할 것이고, 의원내각제 국가는 국회의원이 내각의 장(장관)이 되므로 의원입법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이는 한국과 일본의 경우를 비교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즉 대통령제인 우리나라는 의원입법이, 의원내각제인 일본은 정부입법이 월등히 많다.

최근 임기를 마친 한국의 제20대 국회(2016. 5. ~ 2020. 5.)의 경우, 국회 임기 4년간 총 24,141건의 법률안이 제출되었는데, 이 중 의원입법안이 23,047건, 정부입법안이 1,094건으로 의원입법안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렇게 제출된 법률안 중 국회 결의를 거쳐 법률로 제정 및 개정에 반영된 건수는, 의원입법이 8,061건으로 약 34.9%의 반영률이었고, 정부입법이 738건으로 약 67.4%의 반영률을 보였다.

한편, 의원내각제 국가인 일본의 경우를 보면, 우리나라와 달리 행정부 수반인 내각총리대신에게는 의회해산권이 있어 우리 국회의 회기 등과 바로 비교하기는 힘든 면이 있으나, 2021년 1년간을 기준으로 보면, 149건의 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되었는데, 이 중 의원입법은 86건이 제출되어 21건이 법률로 성립하여 24.4%의 성립률을 보인 반면, 정부입법안이 63건 제출되어 61건이 법률로 성립하여 96.8%의 성립률을 보였다.

이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대통령제 국가라고 하여 꼭 정부입법이 많은 것이 아니고, 의원내각제 국가라 하여 반드시 의원입법이 많은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위 통계에서 알 수 있는 두드러진 사실은 한국 국회에 제출된 입법안의 수가 많다는 것이다. 한국 국회의 입법안 제출 건수는 아래 표를 보면 얼마나 많은지 한눈에 알 수가 있다.


주요국의 국회 접수법안 수 비교(4년 평균)

단위: 건

국가

선출의원

(명)

연평균

개회일수(일)

전체

접수법안

1인당

접수법안

한국3004624,14180.5
미국53513821,73740.6
프랑스5771322,0433.5
독일7091108471.2
일본710549471.3
영국6501605720.88

출처: ‘더 많은 입법이 우리 국회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국회미래연구원


위 표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국회에 접수된 법안은 세계 여러 선진국에 비해서도 월등히 많다. 국회의원 1인당 제출 법안 수가 80건이 넘는다. 국회 회기의 연 평균 개회 일수는 가장 적으면서 이렇게 많은 법안을 어떻게 심사하고 검토할 수 있을까? 국회의원들이 자신이 제출한 법안에 대해서는 얼마나 잘 알고 숙고하였을까? 이렇게 많은 법안을 제출하여야만 국회의원으로서 본분을 다하는 것일까? 접수 법안이 적은 다른 선진국의 국회의원들은 그 본분을 망각하고 있는 것일까? 과연 이렇게 많은 입법안 수가 우리나라를 더욱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드는 것일까? 등등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우선, 의원입법이 많은 이유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정부입법에 비해 너무도 간단한 의원입법 절차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정부입법 절차는 행정부의 주무부처가 입법계획을 수립하고 법률안을 입안하면, 관계부처 및 당정협의를 거치고 입법예고절차를 밟은 후, 다시 규제개혁위원회 심사를 거치게 된다. 그 후 법제처 심사를 거쳐 국무회의에 올라간 법률안을 대통령이 재가하면 국회에 제출(법안 발의)하게 된다. 이에 비하여 의원입법 절차는 국회의원이 법안을 작성하여 동료 의원 10명 이상의 공동 서명만 있으면 법안이 발의되게 되어 있다. 즉, 한국의 의원입법 절차에는 어떠한 사전∙사후적인 협의나 심사, 평가 제도가 없다. 이와 같이 의원입법 절차에 아무런 제한이 없다 보니 의원입법이 비정상적으로 많은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또 의원입법이 많은 이유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시민단체와 언론매체가 법안 발의 건수로 국회의원들의 주된 의정활동을 평가한다는 것이다. 최근 법률소비자연맹이 제21대 국회 전반기 평가보고서를 발표했는데, 법안 발의 건수, 법안 통과율 등 정량적 기준으로 국회의원을 평가하여 줄을 세우고, 언론은 이를 일제히 보도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에 더하여 최근에는 진영논리에 따른 포퓰리즘 법안이나, 당리당략적 법안들이 많이 쏟아지고 있다. 2019년 10월에는 모 정당에서 현역의원의 다음 공천에 ‘대표발의 법안 수’를 반영하겠다고 발표하자 발표 당일 하루에만 현역의원의 대표발의 법안이 181건이나 접수된 적도 있었다는데, 최근의 상황을 잘 보여 준다 할 것이다. 보다 나은 국민의 삶을 위한, 보다 합리적인 제도를 마련하고자 하는 입법목적은 안중에도 없고, 진영논리에 따른 편중된 규제법안으로 인하여 국가 경제발전 등에 적잖은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도 많이 있는 것 같다.

의원입법안 중에는 단순한 자구 수정, 여러 법안을 묶은 재활용 법안들이 대다수인 점을 감안한다면 국회의원 개인의 법안 발의 실적을 부풀리기 위한 목적이 강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의원입법들 중에는 일반적으로 시행령 개정이나 예산의 증·감액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내용임에도, 법률 개정으로 접근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 경우 행정비용 낭비가 생기는 것은 물론이고, 법제도의 유연성이 떨어지는 문제도 발생한다. 지나치게 세세한 내용까지 모두 법률에 규정되면 법제도 경직성은 커지기 때문이다. 국회가 제정한 법률로부터 위임 받은 사항을 보충하기 위하여 발하는 법규명령, 즉 시행령(대통령령)과 시행규칙(총리령과 부령)은 각 행정부가 입법예고를 거쳐 국무회의에서 심의 후 공포한다. 처리기간이 비교적 짧기 때문에 사회 변화에 더욱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법률은 다르다. 의원입법 발의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국회 논의를 통해 처리되려면 적어도 수개월, 수년이 걸린다.

의원입법 발의 건수가 급증하면서 여러 문제점들이 지적되자 의원입법도 정부입법처럼 적절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이 같은 비판을 의식해 '사전 입법영향분석'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부입법에 사전영향평가, 규제심사 등의 절차를 진행하는 것처럼 의원입법에서도 다각적인 사전 영향 분석을 실시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개선안은 '입법권 침해'라는 국회의원들 반발에 부딪쳐 번번이 무산되어 왔고, 앞으로도 이런 제도 도입은 요원해 보인다. 국회 자체에서의 자정 작용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법안 발의 건수가 아니라 법안의 내용이라는 점에 관해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현행 과잉 입법을 막기 위해서 입법평가절차나 규제심사절차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가 힘을 얻고 있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가 의결하면 무조건 법률이 된다는 접근법 대신, 법안을 발의함에 있어, 국민의 기본권과 자유에 합치하는 방향인지, 국가 발전에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지 여부 등을 사전에 면밀히 살펴보고 검토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한 것 아닌가 한다.

이에 비해 일본은 의원입법안 제출 건수 자체가 매우 적다. 게다가 정부입법안의 법률 성립률에 비하여 현저히 낮은 성립률을 보인다. 그렇다면 일본의 국회의원들은 본분인 입법활동을 하지 않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 보이는데, 먼저, 일본의 법률안 제출 절차를 살펴보자.

정부입법(내각입법)의 경우, 담당 성청(省庁)이 법률안을 입안하면 먼저 내각 법제국에서 까다로운 심사를 한다. 그리고 정권 여당 내의 담당 부회(部會), 위원회에서 충분한 검토를 거치는데, 이때 필요에 따라 유식자(전문가)의 자문이나 일반 공청회 등도 거친다. 그 후 각의(우리의 국무회의에 해당, 내각총리대신이 주재하고 각의는 만장일치가 원칙)의 결정을 거쳐 국회에 제출되게 된다.
의원입법의 경우, 중의원은 의원 20명 이상, 참의원의 경우 의원 10명 이상의 찬성(단, 예산을 동반한 법률안의 경우, 중의원은 50인 이상, 참의원은 20인 이상 찬성)이 있어야 법률안을 발의할 수 있다. 의원입법의 발의 요건 자체가 다른 나라에 비하여 까다롭게 되어 있는 것 같은데, 여기에 더 까다로운 절차가 있다. 즉, 각 의원이 소속되어 있는 정당의 기관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자민당의 경우 당4역(간사장, 총무회장, 정조(政調)회장, 국대(國對)위원장)의 승인의 서명이 없으면 의회사무국에서 법안을 수리하여 주지 않는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자민당의 총무회, 정조심의회, 부회, 관련 특별위원회 등에서 원칙적으로 만장일치에 따른 승인을 필요로 한다고 한다. 이를 위하여 사전교섭(根回し)이 필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또한 일본은 국회가 중의원과 참의원으로 구성되어 있는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으므로 국회에 제출된 법안은 통상 먼저 중의원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본회의에서 심사∙가결 여부를 결정하고, 가결된 법안은 참의원으로 송부된다. 참의원에 송부된 법안도 중의원과 유사한 심사∙가결 절차를 거쳐 성립된다. 만약 참의원에서 부결될 경우는 어떻게 할까? 먼저 ‘양원협의회’를 열어 중∙참양원의 대표가 일치된 의견을 모으는 절차를 밟는다. 협의의 결과로 수정된 법률안이 만들어 지고 이를 양원에서 각각 가결시키면 법률로 성립하게 된다. 또 다른 방법은 중의원에서 재가결을 하는 경우이다. 즉, 중의원에서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재가결하는 경우는 법률로 성립하게 된다.

일본의 경우, 위와 같은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기에 제출되는 법률안의 수가 적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특히 의원입법의 수가 적으며, 성립률이 현저하게 낮은 이유로, 일본 의회에 집권 여당을 견제할 수 있는 야당의 존재가 미미하기 때문이라는 점도 거론된다. 야당에서 법률안을 제출하여도 법률로 성립되기 어렵다는 점도 한 몫을 하는 것 같다.
반면, 정부입법의 경우 사전에 정권 여당과의 긴말한 협의 절차를 거치기에 일단 발의되면 국회에서는 그리 어렵지 않게 가결되므로 성립률이 높은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래서인지 일본에서는 의원입법 건수가 적다는 것에 대한 비판보다는 정부입법의 성립률이 높은 것에 대한 비판이 주종을 이루는 것 같다. 즉, 관료가 주도하는 일본사회의 폐해가 표출된 것이라고 비판하는 견해다. 그리고 여당의 독주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는 야당의 태도나 그 형편을 문제시 하거나, 의원입법의 절차가 까다로운 것에 대한 비판도 눈에 띈다.

한국과 일본의 제도 중 어느 제도가 더 나은 제도라고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법률을 제정, 개정함에 있어서도 한국과 일본은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법을 계수하였음에도 이제는 법률의 제정, 개정 자체부터 너무도 달라보인다. 과잉입법이 문제되는 한국과 의원입법의 부진함이 문제되는 일본, 양국의 서로 다른 한 단면이 보이는 부분으로, 서로 다른 사회 분위기와 문화의 차이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필자> 박인동 변호사
- 現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 주일 한국기업연합회 법률고문
- (재)한일산업·기술산업협력재단 감사
- 前 일본 동경변호사회 회원 (2007-2014)
- 일본변호사연합회 국제교류위원회 간사 (2008-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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