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혼인관계의 성립과 해소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법률체계는 일본으로부터 대륙법계의 근대 법률체계를 계수한 것이다. 따라서 법률체계 면에서 보면 일본과 상당히 비슷하다. 하지만 법률이란 그 나라의 사회・문화의 총결집체이기에, 아무리 같은 법률체계에서 출발하였다 하더라도 이를 적용하고 운영하면서 세부적인 내용은 많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일본 법률과 비교하여 보면 특히 형사법 분야 등은 우리나라의 그것과 뚜렷한 차이가 있다. 군사독재 시절을 거친 한국의 역사적 굴곡과 통치체제가 비교적 안정적이었던 일본의 경험의 차이에서, 한국은 피고인 또는 피의자 인권보호라는 관점에서 형사법 개정이 많이 진행되었고, 반면 일본은 피해자보호 관점에서 형사법을 운용하여 왔기에, 양국의 형사법의 구체적인 제도와 내용이 서로 차이를 보이는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회사법 역시 한국이 IMF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일본과 상당한 부분이 달라졌다. 그렇다면 양국 국민의 가족 생활의 근간이 되는 혼인 및 혼인관계의 해소와 관련하여서는 어떠할까? 여기서도 일본과 한국의 사회・문화적 차이를 느낄 수 있게 된다.

국민이 법령의 규정에 따라 행정관청에 일정한 사실을 진술하거나 보고함으로써 공법적 효력을 발생시키는 것을 ‘신고’라고 한다. 출생신고, 전입신고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사적 영역인 혼인 또한 법적 효력이 생기는 것은 혼인신고를 하면서부터이다. 즉, 한국과 일본 모두 ‘법률혼제도’를 취하고 있다. 따라서 법적 혼인관계가 성립된 후 이를 없던 것으로 돌리려면 그 혼인신고를 말소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혼인신고를 말소하는, 다시 말해 혼인관계를 해소하는 방법으로 혼인 무효와 혼인 취소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통상적으로는 합의 또는 재판에 의한 ‘이혼’을 한다는 점은 한국과 일본이 대동소이하다. 그런데, 한 발 더 들어가면 양국의 혼인 해소제도에도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일본과 한국에서 결혼을 금지하는 근친자의 범위에 대해서 살펴보자.
생물학적, 유전학적인 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 등으로 근친혼을 금지하는 것은 세계 공통적인 흐름이다. 하지만 그 나라, 그 사회의 문화, 전통 등에 따라 근친혼을 금지하는 범위는 각 나라마다 차이를 보인다.

한국의 경우는 ① 8촌 이내의 혈족(친양자의 입양 전의 혈족을 포함한다) 사이, ② 6촌 이내의 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6촌 이내의 혈족, 배우자의 4촌 이내의 혈족의 배우자인 인척이거나 이러한 인척이었던 자 사이, ③ 6촌 이내의 양부모계(養父母系)의 혈족이었던 자와 4촌 이내의 양부모계의 인척이었던 자 사이에서는 혼인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민법 제809조).

한편 일본의 경우는 직계혈족 또는 3촌 이내의 방계혈족(친양자의 입양 전의 혈족 포함) 사이에는 혼인을 할 수 없다(다만, 양자와 양가의 방계혈족 사이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만 규정하고 있다(일본민법 제734조).

이와 같이 한국과 일본은 혼인을 금하는 근친자의 범위부터 차이가 많이 난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유교의 영향이 강해진 에도시대 이전부터 황실이나 귀족 간 근친혼이 많았고 부락공동체를 기본으로 하는 민간의 풍습 등이 법제도에도 영향을 미친 것 아닌가 한다. 이에 비해 엄격한 유교 전통 사회였던 한국에서는 근친혼을 엄격하게 금하였기에 근친자의 범위가 넓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인식이 친족관계의 기본을 규율하는 법제도에 반영된 것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근친혼’이라면 그 혼인은 무효가 되는 것일까.
한국의 경우, ① 당사자 간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 때나, ② 당사자 간 8촌 이내의 혈족(친양자의 입양 전의 혈족을 포함)일 경우, ③ 당사자 간에 직계인척관계(直系姻戚關係)가 있거나 있었던 때(예컨대, 계모와 의붓아들 사이의 혼인 등), ④ 당사자 간에 양부모계의 직계혈족관계가 있었던 때(예컨대, 양모와 양자 사이의 혼인 등)에는 혼인 무효확인 소송이 가능하다(민법 제815조). 그 외의 근친자 간의 혼인의 경우는 그 혼인의 취소를 청구할 수 있을 뿐이다(민법 제816조).

이에 비해 일본의 경우, 당사자 간 혼인의 의사(혼인의 합의)가 없을 때만이 혼인의 무효 사유가 되고, 근친자 간의 혼인은 모두 혼인의 취소 사유에 해당한다(일본민법 제742조, 제743조).

여기서 혼인 무효와 혼인 취소가 어떻게 다른가에 대하여 알아 봐야 할 것 같은데, 혼인의 무효는 처음부터 상대방과 혼인을 한 적이 없었던 것으로 (소급적으로)법적 관계가 정리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무효인 혼인 관계에서 출생한 아이는 혼외의 출생자가 된다. 이에 비해, 혼인의 취소는 취소 후, 이른바 장래에 향해서만 그 효력이 발생한다. 즉, 소급효가 없어 이미 발생한 법률관계는 없어지지 않는다(민법 제824조, 일본민법 제748조). 따라서 혼인 취소 이전에 태어난 아이는 혼인 중의 출생자가 되고, 혼인 취소에도 그 영향을 받지 않는다. 비록 법률에서 금지하는 근친혼이라 하더라도 법적으로 취소가 되지 않는 한(즉, 혼인취소판결이 없는 한), 혼인의 법적 효력은 유지되는 것이다. 근친혼을 무효 사유로 하느냐 취소 사유로 하느냐는 선택의 문제로 입법에 의해 정해지는데, 그 나라에서 통용되는 결혼문화, 가족관계 및 가족 질서에 관한 인식과 국민적 합의가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할 것이다.

최근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혼인 무효를 규정한 민법 제815조 제2호, ‘8촌 이내의 혈족 사이에서는 혼인하지 못한다’는 규정에 대하여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렸다(2022년 10월 27일 선고 2018헌바115). 6촌 간 혼인을 무효로 한 사안에서, 헌법재판소는 8촌이내 혈족 간의 결혼을 금지한 조항 자체(민법 제809조 제1항)는 가족 질서를 보호하고 유지한다는 공익이 매우 중요하므로 과잉금지원칙에 위배하여 혼인의 자유를 침해하지는 않는다고 하여 헌법에 위반하지는 않는다고 판단하면서도, 근친혼이 가까운 혈족 사이의 신분관계 등에 현저한 혼란을 초래하고 가족 제도의 기능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혼인의 취소를 통하여 장래를 향하여 혼인을 해소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것으로 충분함에도 이를 일률적ᆞ획일적으로 무효 사유로 규정하는 것은 입법목적 달성에 필요한 범위를 넘는 과도한 제한으로 보지 않을 수 없는바, 입법목적 달성에 필요한 범위에 대해서는 입법자에게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시하는 헌법불합치결정을 하면서, 2024년 12월 31일까지 이 조항을 개정하도록 명했다. 그러면서 헌법재판소는 첫째, 방계혈족 사이의 금혼 범위를 4촌 이내로 축소하라, 둘째 4촌 이내의 방계혈족 사이에 혼인이 이루어진 경우 2촌 까지는 무효로 하고 그 외에는 혼인 취소 사유로 함이 타당하다, 셋째 혈족뿐 아니라 인척 사이의 금혼 규정 및 입양으로 인한 법정 혈족 또는 인척이었던 자 사이의 금혼 규정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 개정방안까지 제안하였다. 향후 어떤 식으로 법률이 개정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무릇 가족 관계에 관한 사회⋅문화적 인식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천하고, 사회 일반에의 통용은 사법부에 의하여 확인되거나 법제도로써 재확립되어 다시 한 나라의 가족 관계의 근간이 되는 것 아닌가 한다.

다음은 혼인의 취소에 대해서 살펴 보자.
혼인 취소의 경우도 역시 민법에 혼인 취소 사유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반드시 그 사유에 해당하여야만 혼인 취소소송이 가능하다.

한국의 경우, 혼인 취소 사유란 ① 혼인 연령의 미달(민법 제817조, 제807조), 동의를 요하는 혼인에서 동의가 없는 경우(민법 제817조, 제808조), 근친혼 등의 금지(민법 제809조, 제815조의 혼인의 무효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를 제외한다) 또는 중혼 금지(민법 제810조)의 규정에 위반한 때, ② 혼인 당시 당사자 일방에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악질 기타 중대사유있음을 알지 못한 때, ③ 사기 또는 강박으로 인하여 혼인의 의사표시를 한 때로 규정하고, 취소 사유에 해당할 경우에 법원에 그 취소를 청구할 수 있다(민법 제816조).

한편 일본의 경우, 혼인적령(일본민법 제731조), 중혼 금지(일본민법 제732조), 재혼금지기간(일본민법 제733조), 근친자 간 혼인 금지(제734조), 직계인척 간 혼인 금지(일본민법 제735조), 양부모와 양자 등 사이의 혼인 금지(일본민법 제736조)를 위반한 경우와 사기 또는 강박으로 인하여 혼인의 의사표시를 한 때로 규정하고 취소 사용에 해당할 경우 가정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일본민법 제744조 및 제747조).

근친혼의 범위와 무효・취소 사유를 제외하고 가족 제도 관련해서 우리의 제도와 상이한 점은 일본에는 아직도 재혼금지기간에 관한 조항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조항은 한국의 민법에도 있었다. 2005년 3월 31일자 민법 일부 개정에 의하여 삭제되기 전까지 일본 민법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즉, 당시 민법 제811조는 “여자는 혼인관계의 종료한 날로부터 6월을 경과하지 아니하면 혼인하지 못한다. 그러나 혼인관계의 종료 후 해산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하고 있었다. 이 재혼금지기간 조항은 애초 부성 추정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마련된 전근대적 규정으로, 이는 여성에 대한 차별적인 규정으로 비쳐질 수 있을 뿐 아니라, 친자관계감정기법의 발달로 별도의 기간 제한을 둘 필요성이 없어졌다고 판단하여 삭제된 조항인데, 아직도 일본에는 존치하며, 2016년 민법 일부개정으로 그 재혼금지기간만 100일로 단축하였다.

물론 일본에서도 해당 조항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결국 2022년 2월에 일본 법제심의회에서 “재혼금지기간의 폐지”에 관한 재검토안을 법무대신에게 제출하였고, 동년 10월에 재혼금지기간 조항을 철폐할 것을 각의(閣議)결정 하였다고 한다. 조만간 법률개정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소해 보이는 이와 같은 차이도 한국과 일본의 여성의 지위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라 하겠다.

지금까지 살펴본 혼인의 무효 사유와, 취소 사유란 모두 혼인 성립 전의 사유에 의해 기인한 것이다. 반면, 이혼이란 혼인 이후 발생한 사유에 의하여 혼인관계를 해소하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혼인의 무효와 취소와 다르다. 혼인의 무효 및 취소는 소송을 통하여야 사법부의 확인을 받아야 하지만, 이혼의 경우는 재판상 이혼 이외에 협의 이혼이란 방법을 통하여 당사자가 합의하여 혼인관계를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다르다 할 것이다. 이하 이혼에 관하여 살펴보자.

이혼에 관하여는 한국과 일본의 제도는 거의 비슷하다고 할 수 있으나, 특히 협의이혼 절차에 관하여서는 다른 점이 있는 것 같다. 여기서는 이 다른 부분에 대해서만 간단히 살펴 보자.

먼저, 한국의 협의이혼 절차는 아래와 같다.
협의이혼은 가정법원의 확인을 받아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의 정한 바에 의하여 행정관청에 신고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긴다. 협의이혼 신고는 당사자 쌍방과 성년인 증인 2명이 연서한 서면으로 하여야 한다(민법 제836조). 여기까지는 일본과 대동소이하다. 그런데, 한국은 2007년 12월 21일자 민법 개정으로 소위 ‘숙려기간’에 관한 조문(민법 제836조의 2)을 신설하였다. 즉, 협의이혼을 하려는 자는 가정법원이 제공하는 이혼에 관한 안내를 받아야 하고, 가정법원은 필요한 경우 당사자에게 상담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갖춘 전문상담인의 상담을 받을 것을 권고할 수 있다. 또 이혼의사의 확인을 신청한 당사자는 가정법원이 제공하는 이혼에 관한 안내를 받은 날부터 1개월(단, 양육하여야 할 자(포태 중인 자를 포함)가 있는 경우에는 3개월로 하며, 폭력 등 이혼을 할 급박한 사정이 있는 경우는 그 숙려기간을 단축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이 지난 후에 이혼의사의 확인을 받을 수 있다. 이와 같은 이혼 숙려기간을 둠으로써 이혼을 하려는 자는 이혼 결정에 신중을 기하게 될 뿐 아니라, 진지하게 재고할 시간이 주어진다. 당연히 숙려기간 동안 이혼의사를 철회할 수 있다. 숙려기간 제도로 실제 이혼률을 조금 감소시킨 것 같기도 하다.

한편, 일본의 협의이혼 절차는 법정 양식에 따라 행정관청에 이혼 신고서를 제출함으로써 종료된다. 협의 이혼 신고에는 당사자 쌍방과 성년인 증인 2명의 서명 또는 날인이 있어야 한다. 한국과 같이 이혼 의사를 법원에서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일본에서의 협의이혼 시 증인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증인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 이를 대행하여 주는 곳도 있다고 한다. 특히, 일본문화에 친숙하지 않은 외국인이 이혼할 때는 이 부분을 잘 확인하여야 할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가족 관계의 근간이 되는 ‘혼인’제도를 법률혼으로 한정하고, 혼인관계의 해소 방법으로 혼인의 무효, 취소 및 이혼이란 제도를 둔 법률체계는 한국과 일본이 유사하지만, 그 내용에 들어가 보면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차이를 확인, 인정하고 그 연유를 다시 음미하여 보는 것도 창조적 한일관계 발전의 밑거름이 되리라 믿는다.


<필자> 박인동 변호사
- 現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 주일 한국기업연합회 법률고문
- (재)한일산업·기술산업협력재단 감사
- 前 일본 동경변호사회 회원 (2007-2014)
- 일본변호사연합회 국제교류위원회 간사 (2008-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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