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재일코리안 이야기


일본에는 ‘재일코리안 변호사협회(LAZAK: Lawyers Association of ZAINICHI Koreans, 2001년 5월 설립, 이하 ‘LAZAK’이라 함)’라는 단체가 있다. 일본에 사는 ‘재일코리안’ 출신의 변호사들의 단체이다. 여기서 ‘재일코리안’이란 말이 다소 생소할 수도 있을 텐데, 이 같은 용어를 사용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1965년의 한일협정 체결 전에는 ‘조선반도’, ‘조선인’이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실제 한일합병조약의 당사국은 대한제국과 일본제국이었고, 한일협정 체결 이후에는, ‘在日(자이니치)’, 또는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재일 한국인’, 한국 국적을 가지지 않고 예전의 조선 국적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재일 조선인’, ‘코리안’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게 되었다. 반면, 한국에서는 소위 ‘재일교포(동포)’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는데, 이는 ‘한국에서 건너가 일본에 정착하게 된 한국 국적자 및 그 후손들’을 통틀어 일컬었다. 이와 같이 한국과 일본에서 사용되는 용어가 달라, 혼동을 초래할 수가 있는 점을 감안하고, 분단국가가 된 한국인 및 조선인을 총칭할 용어로서 ‘재일코리안’을 편의상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LAZAK에는 국적이 한국일 필요가 없고, 북한과 가까운 사람(즉, 한국 국적이 아닌 예전의 ‘조선’ 국적인 사람), 일본 국적으로 귀화한 사람도 구성원이 될 수가 있다. 이 글에서도 ‘재일코리안’이란 용어를 쓰기로 한다.

이 LAZAK에서 2008년에「裁判中の在日コリアン(재판 속의 재일코리안)」이란 제목의 단행본을 발간하였다. 이 책은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일컬어지는 일본이라는 외국에서 재일코리안들이 민족 차별과 국적 차별이라는 부당한 대우에 항거하면서, 어떻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켜 왔으며, 어떻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여 왔는가에 대한 기록인데, 단순한 역사적 기록물이 아니라 재일코리안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하여 제기한 일련의 소송 및 인권 활동 등을 재일코리안 변호사들이 알기 쉽게 풀이하여 쓴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들이다. 당시 일본에서 변호사 활동을 하고 있던 필자는 LAZAK에 이 책의 번역을 자청하였고, 번역본은 2010년에 한국에서「일본 재판에 나타난 재일코리안」이란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2008년 출간된 책의 내용은, 먼저 재일코리안 형성의 역사, 재일코리안의 법적 지위의 변천을 소개하고서, 형사사건에 나타난 재일코리안의 상황(고마쓰가와 사건, 소위 ‘김희로 사건’이라 일컫는 스마타협곡 사건), 전후에도 해결되지 않은 일들(재일한국인 종군‘위안부’와 B・C급 전범, 사할린 잔류 한국인・조선인, 일본국적 확인소송), 일상 생활에서의 차별(히타치재판, 민족교육과 재판, 우토로 재판, 입주차별재판, 골프회원권 가입자격), 법률에 의해 일어나는 차별(지문날인 거부소송, 무연금 재판), 재일코리안의 정치참가・사법참가(동경도관리직 재판, 사법연수생의 국적 요건, 조정위원・사법위원・참여원의 국적 문제, 지방참정권 소송) 등을 기술하고, 남은 과제로 국적과 참정권 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위 책을 번역하면서 초창기 재일코리안들의 궁핍하고 힘든 삶이 오롯이 전달되는 것 같아 몹시 마음이 아팠다. 자신의 의사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국적이 변경되면서 겪는 차별,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취직도 할 수가 없고, 집도 구할 수가 없는 차별과 무시를 겪으면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켜온 재일코리안분들께 존경과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LAZAK에서 2022년 3월「재판 속의 재일코리안」의 개정증보판을 다시 출간하였다. 그 후 필자에게 한국에서의 출판을 위한 번역 의뢰가 들어와 흔쾌히 수락했다. 그리고 이 개정증보판의 번역본은 초판 번역본과 같이「일본재판에 나타난 재일코리안」이란 제목으로 2023년 8월15일 한국에서 출판되었다. 개정증보판의 번역본이 나오자 서울변호사회에서 감사하게도 ‘북콘서트’까지 개최해 주었는데, 예상외로 100여 명이 넘는 한국 변호사들이 참석해 성황을 이루었다.

이 개정증보판은 초판이 출간되고 14년이 지나서 나왔다. 그동안 일본 사회는 어떻게 변했고, 재일코리안의 인권 상황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애석하게도 그 후의 일본의 상황은 그다지 좋아진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악화된 면도 있어 보인다. ‘혐한’ 분위기 확산에 의한 혐오 발언(Hate-Speech)・혐오 범죄(Hate-Crime)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어 여러가지 사건, 사고들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에 이번 개정증보판에서는 ‘혐오 발언⋅혐오 범죄와의 투쟁’이라는, 초판에는 없던 장(章)이 추가되어, 교토 조선인 학교 습격사건, 토쿠시마 교직원조합 습격사건, 이중 차별(인종차별・여성차별)과의 싸움, 가와사키 혐오시위금지 가처분사건, 쓰루하시 혐오금지 가처분, 혐오괴롭힘 재판 등의 내용을 추가되었다(그 외에도 많은 내용이 추가되고 변경되었다).

개정증보판 번역을 하면서, 왜 최근에 이러한 ‘혐한’분위기가 형성되고 혐오 발언・혐오 범죄 등이 사회 문제화 되고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이 같은 ’혐한’ 분위기를 리드하는 집단으로 ‘재특회(在特会)’란 단체가 있는데, 이 단체명은 ‘재일코리안의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이란 뜻이다. 이들은 자신들 일본인은 점점 살기가 힘들어지는데, 재일코리안의 삶은 점점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고, 이는 분명 재일코리안이 자신들이 갖지 못하는 어떤 특권을 누리고 있기 때문인 양 믿어버리고, 이 같은 특권을 재일코리안에게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허황된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사실이 아닌 날조된 소문들을 퍼트리고 다니며, 재일코리안에게 혐오 발언과 혐오 범죄를 저지르는 등 해코지를 하고 다닌다.

이 재특회가 주장하는 ‘재일코리안의 특권’이란 재일코리안의 특별영주자격, 통명(通名) 사용, 생활보호우대, 조선학교에 대한 보조금 등을 말한다. 하지만, 특별영주자격이란 식민지 정책의 영향으로 스스로의 의사에 반하여 국적이 변경된 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조치에 불과한 것이지 특권이라 할 수 없는 것이고, 통명 사용이란 일제의 창씨개명의 잔재로 일본에서 살아 남기 위한 재일코리안의 처절한 몸부림으로 인해 형성된 제도로 볼 수 있으며, 일본 국민이 아닌 재일코리안에게 생활보호우대를 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인 것이다. 나아가, 국교도 없는 북한과 가까운 조선학교에 보조금을 준다는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는 것임에도 이들은 이렇듯 사실이 아닌 내용을 사실인 양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있다. 이 재특회의 활동에 대해서는 법원도 판결로서 제동을 걸고 있을 뿐 아니라 법률 제정으로도 이를 저지하고 있다. 일본 우익세력 내에서도 크게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는 형편이다.

이러한 재특회의 출현과 그 활동을 보면서, 이렇게 말도 되지 않는 주장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부류의 사람들일까? 하는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 일본 사회에서 제대로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負け組)이 회원의 대부분인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눈에는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일본 사회에서 활약하는 재일코리안들이 많아짐에 따라, 이를 시기하는 한편 자신들의 상황에 대해 우회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데, 최근의 ‘혐한’분위기는 초창기 재일코리안들이 당했던 무시와 차별과는 조금은 결을 달리하는 것 아닌가 한다. 당시의 무시와 차별은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멸시와 비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즉, 당시 일본인이 보는 한국은 자신들이 식민지배를 했던 미개하고 전근대적인 국가로 인식되어, 일본이 계몽해 주고 지원해 주어야 하는 나라로 여겨 졌다. 따라서,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코리안을 미개한 사람으로 인식하여 차별하고 무시한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은 더 이상 그러한 나라가 아니다. 2021년 전국경제인연합회 보고서 따르면, 2020년 IMD 국가경쟁력에서 한국은 23위, 일본은 34위로 조사되었고, 2021년 S&P 국제신용등급에서 한국은 AA, 일본은 A+로 평가되었다. 또 2018년 구매력 평가 기준 1인당 국내 총생산(GDP)에서 한국은 43,001달러로 42,725달러였던 일본을 처음으로 추월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일본으로부터 독립은 했지만 미개하다고 무시했던 그 나라가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성공적으로 완수하여 현재 세계 10위의 경제력을 가진 국가가 된 것이다.

반면, 일본도 패전 이후 고도 성장기를 거쳐 초 일류국가로 발돋움하였으나, 1990년대 버블 붕괴와 그 이후 장기경제침체로 잃어버린 30~40년을 보내고 있다. 이러한 일본, 특히 일본 우익의 입장에서는 한국의 발전이 마냥 좋지만은 않게 보였으리라. 그러다 보니 ‘혐한’ 분위기가 점차 형성되어 간 것이 아닐까 한다. 높아지는 한국의 위상에 대한 반작용이 아닐까 싶다.

예전의 비대등 관계에서 대등한 관계로 변화한 한일관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 먼저, 대등한 관계가 되었기에 비로소 진정한 파트너 관계를 맺을 수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어느 한 쪽이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뭔가를 요구하는 비대등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대등하게 인정하며 주고 받는 관계가 되어야 진정한 파트너로서의 지속적인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고 본다. 이제 한일관계는 이러한 단계에 접어든 것 아닌가 한다.

한국과 일본은 각기 장점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면, 일반적으로 한국의 기업은 마케팅 능력, 실행력 등에서 일본 기업에 비하여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고, 일본 기업은 관리 능력, 기술력 등에서 한국 기업보다 우수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와 같은 서로의 장점을 상호 인정하며 진정한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협력한다면 한일 기업 모두가 서로 win-win 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렇게 win-win 할 수 있는 관계야 말로 성숙한 파트너 관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한일관계는 진정하고 성숙한 파트너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단계에까지 왔다고 볼 수 있지 않는가? 아직 그 단계까지 오지 않았다면, 지금부터라도 이러한 성숙한 한일관계 구축에 서로 힘을 모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성숙한 파트너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양국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여 주는 것이 가장 기본이라 생각한다. 한일 양국은 역사적, 문화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다. 국가가 다르고 문화와 이념이 다르다고 서로 미워하고 경원 시 할 것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인정하여 주어야 할 것이다.

한일 양국이 진정한 파트너 관계가 되면, 재일코리안의 삶에도 많은 변화가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지금까지의 차별과 무시에 대한 피해의식 등에서 벗어나, 자신들이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진정한 구성원으로서 자존감과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려면 일본의 인종주의는 사라져야 할 것이고, 간혹 한 번씩 터져 나오는 일본 우익 정치인들의 망언 역시 없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을 보면 희망적인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일본의 젊은이들이 K-POP, K-드라마 등 한국 콘텐츠와 문화에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고, 이로 인하여 한국의 이미지도 많이 달라지고 있는 듯하다. 이들이 일본 사회의 기성세대가 되면 양국은 더 친밀한 관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본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 나라에서도 필요하다. 우리의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위하여 반일 감정을 부추기고 역사 문제에만 천착하며, 일본을 제대로 인식하려는 노력을 등한시 해 왔다고 생각한다. 반일 교육을 받아 온 영향에서인지, 우리 시민들도 이러한 정치인들의 말에 휘둘려 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도 이제는 일본을 제대로 인식하려고 노력하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앞으로 보다 성숙한 한일관계의 발전을 이루어야 한다는 방향성은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번 LAZAK의 「일본 재판에 나타난 재일코리안」개정증보판 번역서의 한국 출간에 즈음하여 느낀 점을 적어 보았다. 비대등의 한일관계가 대등한 관계로 진일보된 것만으로도 벅찬 감정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보다 더 성숙한 한일관계로 가야할 것이고, 그래야 일본에 사는 재일코리안의 삶도 질적으로 달라질 것이라 생각한다.


<필자> 박인동 변호사
- 現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 주일 한국기업연합회 법률고문
- (재)한일산업·기술산업협력재단 감사
- 前 일본 동경변호사회 회원 (2007-2014)
- 일본변호사연합회 국제교류위원회 간사 (2008-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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