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단맛과 짠맛


얼마 전 일본 여행을 다녀온 지인이 <시로이고히비토(白い恋人)>라는 유명한 과자를 선물로 들고 왔다. 한입 먹어보니 여전한 단 맛에 예전 도쿄에 머물던 기억이 줄줄이 소환된다. 미각기억과 같은 원시감각기(심리학에서는 시각이 가장 고등한 감각기라고 여김)는 기억효과가 강력해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특정한 맛과 연관된 감정, 감성들이 매우 강하게 떠오르는 법이다

시로이고히비토와 같은 오미야게 (お土産)용 일본 과자나 화과자들은 매우 달다. 사실 과자류뿐 아니라 일본 음식들은 전반적으로 달다. 필자가 가끔 들르던 게이오대학 뒷문 근처의 라멘가게에서는 라멘에 캬라멜을 얹어 팔 정도로 일본인들은 단맛을 좋아한다. 그런데 이런 단맛은 그들의 감성적 기질 더 나아가 우울의 문화와 깊은 연관이 있을지 모른다.

몇 해전 에모리대학에서는 고과당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를 높여 우울증에 취약하게 만든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그간 당분과 우울증 간의 상관관계가 높다는 많은 연구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상관관계를 넘어 당분이 우울증의 원인일 수 있다는 연구들이 늘고 있다. 에모리대학의 연구는 그런 사례의 하나다. 비슷한 연구로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UCL) 역학공중보건연구소에서도 당분을 많이 섭취히면 우울증, 블안장애 같은 정신장애를 앓게 될 수 있다고 했다. 대부분의 연구가 원인으로 당분을 지목하고 있다.

일본에 언제 설탕이 등장했는지 정확히 알 길은 없지만 아메자이쿠(飴細工)라는 설탕공예가 1200년 전부터 당나라의 장인들에게 전수받아 시작되었다고 하니 일본인의 단맛사랑은 일본 역사와 함께 했다고 보아도 될 듯싶다. 당분이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발견에 상상력을 보태면 일본 특유의 조용하고 내향적이며 수동적인 기질, 인기작가 이쓰키 히로유키와 정신과의사 가야마 리카가 일본 문화의 특징이라고 지적한 우울함의 한 가지 원인을 우리가 파악한 것일지도 모른다.

문화적, 심리적 특징에 대한 이런 생리학적 설명은 무척 조심스럽다. 아직은 그 기전을 추정하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생리학적 추정을 한국으로 확대하면 두 나라의 문화적 차이와 일치하는 재미있는 대비를 볼 수 있어 예사롭게 넘기게 되지 않는다.

한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조울증권(양극성 장애)형 문화를 갖고 있다. 쉽게 열정적이 되고 매사를 낙관적으로 보다가 어느 순간 깊은 절망에 빠져 고통스러워 한다. 이런 기질은 한강의 기적이나 활기찬 대중문화를 만들기도 하지만 구성원 개개인의 삶에 병리적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예컨대 한국은 세계 1위의 자살률을 오랜 기간 기록하고 있는데 조울증은 자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질병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하여튼 우리가 조울증권형 문화라는 점에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견이 없다.

많은 정신의학자들은 조울증이라는 양극성 장애와 관련이 깊은 물질로 카페인, 알코올, 설탕, 나트륨을 꼽는다. 특히 나트륨과 칼슘 이온의 흐름을 방해할 경우 흥분상태와 절망적인 상태가 오가는 정신장애가 오기 쉽다고 한다. 나트륨과 칼슘 이온은 뉴런과 뉴런이 맞닿아 있는 시냅스에서 뉴런 간 신호전달을 담당한다. 그리고 이런 뉴런의 거대한 덩어리가 바로 우리의 뇌다. 쉽게 말해 나트륨과 칼슘은 뇌의 정상적인 정보전달, 특히 우리의 감정과 관련된 정보전달 능력을 보장할 수도, 방해할 수도 있는 물질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나트륨 과잉으로 인한 감정정보 전달에 특정한 경향성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바로 조울증권형 기질이 그것일 수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적 추정일 뿐이다.

일본의 음식이 달다면 한국의 음식은 짜고 맵다. 매운 맛은 일종의 통각이라고 하니 여기서는 논외로 할 때 일본과 한국의 문화적 특징 혹은 기질적 특징이 단맛과 짠맛의 대비로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공교롭다.

이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사실 단맛과 짠맛을 통해 두 문화적 특징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런 논의를 하기에는 아직 밝혀져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정작 하고싶은 이야기는 두 나라의 문화의 차이가 이런 미각에까지 뿌리가 닿아 있을 정도로 선명하며 대조적이라는 점이다. 이 점을 서로 인식하고 인정하자는 말이다. 그래서 자신만의 잣대로만 상대방을 평가하고 재단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는 이야기다.


<필자> 지상현 교수
- 한성대학교 디자인대학 교수
- 한성대학교 예술대학 학장
- 연세대학교 대학원 심리학과 박사
- 저서 『안타고니즘(한중일의 문화심리학)』(2020)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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